주일 설교

20-07-12 16:51

하나님의 종과 같이

박용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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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전서 2장 11~17절.

제목 :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날짜 :2020년 7월 12일 프푸순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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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한분 한분의 가정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함께 봉독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더불어 인종 차별 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며칠전에는 프랑스의 한국인 유학생이 여러명의 현지 10대들로부터 인종 차별적인 조롱을 당한 끝에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베를린의 한 마트 계산대에서 한 한국인 여성이 독일인 여성 두명에게 심한 욕설과 머리를 끌어당기며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베를린에서 폭행을 당한 한국 여성은 경찰이 와서 폭행을 한 사람보다 폭행 당한 사람이 잘못이란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 같아서 더 억울했다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이전에도 인종 차별 사건은 있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이후 아시안인에 대한 인종 차별적 행동이 더 많아진듯합니다. 인종 차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존중심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인종, 문화, 종교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같은 나라의 사람에게 차별을 당해도 억울한데 인종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차별을 겪을 때의 억울한 마음은 쉽게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나라, 인종, 문화권의 사람을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부릅니다.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사는 이방인의 삶은 항상 긴장해야 하고 정신적으로 쉽게 피곤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이런 이방인의 삶.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1. 베드로사도는 베드로 전서의 수신인을 나그네로 표현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씀합니다. 

 

나그네, 또는 거류민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레피데모이와 파로이코이가 있습니다. 

두 단어는 히브리어 게르와 같은 의미입니다. 게르는 낯선 땅에서 살아야 하는 힘든 처지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전쟁이나 기근 때문에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 가련한 사람들이 게르입니다. 그들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서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기 힘든 처지에 있었습니다. 

 

같은 의미로서 게르를 번역한 헬라어 파레피데모이와 파로이코이는 낯선땅에 영구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낯선 자들로서 기본적인 삶이 힘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인들은 당시에 원주민보다는 지위가 낮았지만 완전한 외국인보다는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혼할 수 있는 사람, 땅의 소유, 재산 계승, 투표, 일정한 단체 참여에 제한을 받았고 높은 세금을 내야했으며 더 엄한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원주민들과 달리 지역적 뿌리가 없고 민족도 다르며, 언어와 문화도 다르고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이들은 기존질서와 평화에 대해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선행을 해도 욕하고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방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수치와 박해를 받는 흘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을 주면서 박해와 고난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라

 

베드로 사도는 1장과 2장 서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베드로전서 1장을 다시 보면, 

1)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받은 자들이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신 지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통해 구원을 얻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1장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아멘. 

2) 그리고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집을 이루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2장 4-5절 상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3)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2장 5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4) 4번째로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5) 그리고 다섯 번째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10절에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다양하게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정체성을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의 신앙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변화된 정체성에 따라서 살아갈 것을 권면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서 살아가고 행동합니다. 그 믿음들 중에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에 따라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정체성은 우리 행동의 범위를 결정하고 우리의 미래에 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관등은 변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로마 시대에 기독교 박해를 경험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신앙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분명한 신앙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은 그들의 삶을 보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의 이야기를 다룬 폴리캅의 순교라는 책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신자들의 평가를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족속들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이방인들에게>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스트로마타>라는 글에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소개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을 유대인이나 이방인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사는 족속이라는 의미로 ‘제3의 족속’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고대 로마의 그리스 작가인 플루타르코스의 <도덕론>이라는 책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위험한 사상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 로마 법정에 서기도 하였는데, 그들에 대하여 “로마의 신성한 판결의 피고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고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족속들입니다.”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가운데 “멜리토”라는 글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바로 당시 로마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서 받은 독특한 인상이었습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신앙적 정체성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을 갖기에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억울함 속에서도 분명한 신앙적 정체성 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여러분 그리스도와의 분명한 만남을 통해서 변화된 신분의식,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 일상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장 11절을 다시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나그네는 당시 다른 나라에 살면서 실제적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베드로는 또 다른 의미로 나그네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보면 우리 인생을 이 세상에 잠깐 소풍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잠시 왔다가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존번연이 쓴 천로역정은 한 청교도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구원을 체험한 뒤 모든 고난을 이기고 하늘로 들어갈 때 까지의 이갸기를 적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는 것처럼. 순례자는 많은 고난과 유혹을 받습니다. 고난과 유혹을 통해 순례의 길을 멈추게 하려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도 수 많은 죄의 유혹과 넘어뜨리기 위한 공격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르쳐 준 이유는 이런 죄의 유혹과 싸워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현대교회의 선각자인 프란시스 쉐퍼(F. Schaeffer)목사님이 미국교회의 복음주의에 대해서 외치기를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이름만 복음주의일 뿐, 맛 잃은 소금이며 빛 잃은 등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맛잃은 소금이 바로 신앙적 정체성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한 신앙의 정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신앙의 본질이 확립되지 않았기에 작은 문제, 작은 고난에도 상처받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미국 풀러신학교의 이학준 교수는 "오늘날 크리스천의 신앙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면서 "첫째는 '모랄리스틱(moralistic)'으로 '착하면 되지, 남에게 해 끼치지 않으면 되지'라는 도덕적 수준이고, 둘째는 '테라피틱(theraphytic)'으로 '신앙이 어떻게 내게 평안과 행복을 주는가' 하는 수준으로 대표적으로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을 들 수 있고, 세 번째는 '데이스틱(Deistic)' 즉 이신론으로 하나님을 위기 상황에서만 필요한 '119의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수준"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연합, 변화된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내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당장 느껴지지 않으면 교회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떠나고 예배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는 영국의 프랜시스 해버갈(Frances Havergal; 1836-1879)이 작시하였습니다. 20대 초반,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을 때 해버갈은 아버지의 권유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을 여행 중이던 어느 날, 뒤셀도르프에 있는 아는 목사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서재에 걸려 있던 가시관을 쓰신 그리스도의 성화에 감동을 받아 내 너를 위하여라는 찬송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감동을 받은 성화는  슈테른베르크의 <에케이 호모 : 이 사람을 보라>였습니다.

 

슈테른베르크는 독일의 화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던 중, 영감도 없고 그리기도 싫고 해서 길거리로 나갔는데 거기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에게 후히 사례할 테니 자신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했고, 가난한 집시였던 그 여인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슈테른베르크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집시 여인은 화실 한 편에 있던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사람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었기에 나무에 달려 죽었나요?” “그 분은 죄 있는 사람이 아니오. 세상 사람들의 많은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신 것뿐이오.” “그러면 선생님의 죄도, 나의 죄도 대신 지고 돌아가셨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가슴이 무너져 내릴듯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주님! 주님께서 정말 저를 위해 죽으셨나요? 제 죄도 주님께서 지시고 돌아가셨나요?.”라고 기도하는데,  그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예수님의 죽음이 자신을 위한 죽음이었고, 주님의 고통이 자신을 위한 고통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깊은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그린 그림이 바로 ‘에케이 호모’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성경속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실제적 만남의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그런 만남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선을 행하라. 

벧전 2장 12절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도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말하는 선을 행함은 가난한 자를 위한 구제와 같은 일반적 개념이나 금식과 기도와 같은 종교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이하의 권세자와의 관계, 18절 이하의 사환과 주인의 관계, 3장의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서 선을 행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성 속에서 선을 행하는 삶을 살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함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갖고 있고 기도를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16절에서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과 같은 마음으로 선을 행하며 살 것을 말씀합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이 상대에게 순종하며 섬기는 것도 선을 행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원망과 불평으로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또한 열심을 다하는 것. 그것을 통해 어떤 결실을 맺는 것도 선을 행함의 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후이지 테루아키라는 사람의 삶을 담은 책입니다. 그는 종양으로 인해 늘 왕따 또는 차별을 당해왔지만, 언제나 좌절하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이야기한 책 ‘운명의 얼굴’은 일본에서 스테디 셀러가 되었습니다. 

 

2살 때 종양이 나타났는데 의사의 진단은 해면증 혈관종이었습니다. 성장함에 따라 혈관의 종양도 자라는 병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반점은 갑자기 부풀어 올랐습니다. 

 

대학교 때는 붓기가 윗 입술까지 내려왔고, 24살에는 10시간에 걸친 대수술도 받았지만 그의 모습은 확연히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언뜻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중 간호와 복지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간호학을 공부하고 의학부 보건학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출간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즐겁고 힘있게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에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어진 삶의 자리에 감사의 열매를 맺고 선한 영향을 끼치는 복된 삶이 더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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