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08-22 21:44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

박용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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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전서 5장 7~11절

제목 :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

날짜 : 2020년 8월 16일 프푸순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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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도 주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함께 읽으신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정신 무장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합에 나가는 선수는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싸워야 합니다.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할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긍정적 믿음은 우리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신체적인 능력도 떨어뜨리고 평소 잘 하던 것도 실수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뇌와 신체 및 행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과학 작가 데이비드 롭슨은 병에 전염될 수 있다는 위협이 일상적인 상호 작용에 심리적 반응을 왜곡시켜 예상치 못한 행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가령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소식을 계속해서 듣게 되면 우리 정신 건강은 즉각적인 영향을 받아서 불안한 마음이 깊어지고 면역력도 약해져서 실제 건강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인간의 정신은 삶에 실제적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을 366번이나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어떤 태도로 맞이하느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결과도 다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를 통해 고난을 대하는 정신 무장을 단단히 시켜서 고난의 유익을 누리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도록 어떻게 정신 무장을 시키고 있을까요? 

 

1.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라.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복습하는 의미로 다시 베드로전서 1장과 2장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에서  

1)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받은 자들이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통해 구원을 얻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2장 4-5절에서는 

2)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집을 이루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2장 5절에서는   

3)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2장 9절에서는 

4)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2장 10절에서 

5)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얻게된 신분에 대해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이란 다양한 상황에서 유지되는 가치관, 행위의 기준을 말합니다. 

 

사람은 행동하는데 두가지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춰서 행동하는 것과 정체성에 초점을 맞춰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냥 내가 원하는 목표, 결과만 얻으면 모든 것은 옳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정체성에 맞추는 행동은 결과보다는 가치와 본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어제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에서 해방된 광복 7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 늑약으로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 경술국치의 날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이후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고통을 받다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선언하며 우리 나라는 광복을 맞았습니다. 

 

우리 나라는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로서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로서 채 100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9위, 군사력 6위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 사진을 보면 정말 건물도 별로 없고 뭐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진을 보면 고층 빌딩, 아파트등, 정말 대단하구나 싶을 정도로 발전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국뽕에 취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방역 강국으로서 세계적으로도 그 위상을 알리게 되었고 많은 나라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건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입니다. 

 

여러분들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당시에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일제의 악행과 싸우며 생명을 바쳤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속에서 알려진 유명한 독립 운동가 분들도 계시지만 한편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 많은 의병들과 백성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드라마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의병들의 사진인데요. 단 한 장의 의병 사진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사람부터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완용과 같이 1905년 나라의 외교권을 넘겨주는 을사 늑약을 체결하는데 앞장섰던 을사 오적들은 당시 시대적 상황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 놓는 것이니 나중에 다시 힘을 키워서 맡겨 놓은 것을 찾아오면 된다는 논리로 일제에 부역하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당시 이완용이가 일본에 유리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받은 댓가로 축적한 재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의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웠지만 이완용이는 나라야 어떻게 되든 힘있는 자들에게 붙어서 자신의 부와 성공만을 얻으면 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드는 생각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정의와 가치가 무슨 소용이냐, 나라를 지키며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고초를 당하고 저런 것들은 오히려 더 잘 먹고 잘 살지 않나? 굳이 고난 당하면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나? 오히려 상황에 맞게 행동하고 상황을 잘 피하는게 더 지혜롭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독립운동을 한 자손들은 3대가 가난하게 힘들게 살고, 친일파 후손들은 더 부유함을 누리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사가 박건호씨가 한 방송에 나와서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와 이완용의 붓글씨의 가치를 비교해 알려주었습니다. 

 

이완용의 붓글씨는 약 20~40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데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는 작은 것도 무려 5억원이고 긴글은 15억의 가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의 긴 흐름으로 보자면 결국 안중근 의사는 승리자이고 이완용은 패배자“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될 당시에도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잠깐 나 그리스도인 아니라고 황제 숭배를 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일을 스스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 역사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이런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1932년 일본은 일황 중심주의 등을 이념으로 내걸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사참배를 등장시켰습니다. 1935년부터 기독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는데 상당수의 기독교계는 신사참배를 허용했고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은 더 심해졌습니다. 1940년까지 300여명의 목사와 신도들을 감옥에 갇았습니다.  

 

이때 주기철 목사님도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습니다. 

 

후에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인 주승중 주안장로교회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가석방돼 잠시 나왔을 때 할머니에게 하소연한 것을 아버지가 들려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일제의 고문은 끔찍했다.  가장 힘든 고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잠을 안 재우는 것. 정신이 혼미해져 자신도 모르게 우상 앞에 절할까봐 가장 두려웠다고 했다. 또 하나는 아랫도리를 벗긴 채 널빤지에 올려놓고 밧줄로 묶어 꼼짝 못하게 해놓고 요도에 쇠꼬챙이를 쑤셔넣는 것이었다. 칼로 아랫도리를 저며내는 듯한 고통에 몇 번씩 기절하면서 주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내 영혼을 거둬가 주소서”라고 울부짖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고문을 당한 뒤에는 한 달, 두 달 소변을 볼 수 없어 기어다녔다.

 

​7년간 혹독한 고문은 계속됐다. 언젠가 할머니가 면회 가서 솜 넣은 바지저고리를 건네자 주 목사는 “제발 옷 속에 솜을 넣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 불도 안 때는 감옥에서 동상 걸리고 살이 썩으면 어쩌느냐”고 걱정했다. 그러자 주 목사는 입을 열면 엄살이 될 것 같아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놨다. 고문이 끝나면 두툼한 솜이 피에 흠뻑 젖어 마르지를 않는다. 터진 살에 피와 고름이 섞여 얼어붙으면 그것이 다시 칼처럼 살을 찢는다고 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주 목사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내 의지가 있다면 그것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주님 앞에는 말할 수 없는 죄악이다”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이런일을 당할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한쪽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고난도 존재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일을 겪을 일은 사실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편안히 신앙 생활하며 자유롭게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편안함이 오히려 간절함을 잃어버려 신앙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씀드리건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통해서 모든 상황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너희 염려를 주께 맡겨라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상황 환경 가운데서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많은 염려를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경제적인 문제, 핍박과 조롱의 문제가 그들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염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그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다 주께 맡기라고 권면합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메림나오'인데, '걱정한다, 근심한다, 마음이 찢어진다, 마음이 나누어지다. 분열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염려의 두가지 본질에 대해서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1. 염려는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힘이 없다. 는 것입니다. 

마6:27절 –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말씀. 

2.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6:30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합니다. 마귀가 합법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게 만드는 것이 염려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염려는 생기지 않습니다. 염려는 내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염려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서 삶을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마음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들은 다른 목사님의 설교중에 말씀하시기를 네팔의 한 선교사님이 네팔의 코로나 상황을 전하셨는데 코로나 19로 13명이 사망했다고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서 다 봉쇄가 되고 이동도 못하고 일도 못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니까 그것으로 인해 자살을 한 사람이 875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병으로 죽은 사람보다 걱정과 염려로 자살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이런 부정적 영향력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여러분 가운데 이러 저러한 문제가 있고 그로 인해 염려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면 염려할 시간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화니 제이 크로스비 여사는 태어난지 6개월만에 의사의 실수로 실명하여 평생을 앞을 보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일평생을 9천편의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크로스비는 “나는 내가 가진 신체 장애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믿었으며 이 괴로운 조건이 성전의 기둥이 될 수 있는 거룩한 봉사의 계기가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불운을 불평하지 않고 행운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안에 예수님을 바라보며 염려하는 인생이 아니라 찬송하는 인생,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너희 믿음을 굳건하게 하라. 

8절과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일을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염려가 가득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염려가 가득하면 유혹의 소리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굳건하게 할 수 있을까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6 Macht euch keine Sorgen! Ihr dürft in jeder Lage zu Gott beten. Sagt ihm, was euch fehlt, und dankt ihm! 7 Dann wird Gottes Friede, der all unser Verstehen übersteigt, eure Herzen und Gedanken bewahren, weil ihr mit Jesus Christus verbunden seid.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습니다. 

도마 안중근 의사는 1909년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당시 조선 통감자리에 오르고 을사 늑약을 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이로 인해 안중근 의사는  편파적인 재판을 받으며 사형을 선고 받아 1910년 3월 26일 순국하셨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 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먹지 말고 죽어라! 고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에 ”어머니 천국에서 만납시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안중근의사에게는 가족이 있었는데 하얼빈 의거 직전 친구를 통해 가족들에게 연해주에 거처를 마련했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무사히 그곳에 도착하여 불안속에 삶을 살던중, 모르는 사람이 준 과자를 먹은 7살 첫째 아들을 잃게 됩니다. 일본인 밀정이  한 짓으로 생각됩니다. 이 사건 이후 상해에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김구 선생님과 임시 정부의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 정부는 일본에게 테러집단으로 지명 받게 되고, 임시 정부는 상해를 떠나게 되지만,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은 상해에 남겨지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사라진 임시정부대신 안중근 의사의 가족을 붙잡았고 이때부터 가족들은 온갖 탄압속에 하루 하루 생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차남 안준생은 장성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하면 일본군들이 들이 닥쳐 훼방을 놓아서 서른살까지 안준생은 번듯한 직장 조차 없이 길거리에 구걸을 하며 하루 하루를 버티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가 안준생에게 “서울 박문사라는 절에서 열리는 위령제에 참여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과해라, 그렇게만 하면 지나온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제안을 합니다. 이를 거절하면 가족들은 목숨까지도 위협받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결국 안준생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맙니다. 1939년 10월 16일 이토 히로쿠니는 안준생에게 한 손을 내밀고 안준생은 두손으로 잡으며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일본 전역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테러리스트 안중근의 자식이 애비 대신 용서를 구했다“라고 소식을 전했고 안준생은 민족의 영웅 아버지를 둔 민족의 배신자 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뒤 안준생은 미나미 총독의 양자로 들어가 이토 히로쿠니와 일본 전역을 다니며 눈물의 화해를 재현하고 또 재현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호랑이 아비에 개 자식이라 욕하고 침을 뱉었고 김구 선생은 해방이 되면 반드시 죽음으로써 응징해야 할 인물로 안준생을 꼽았습니다.  

막대한 상금을 갖고 상해로 돌아와 가정을 꾸렸고 일본 패망후에는 가족들을 전부 미국으로 보낸 뒤 혼자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폐결핵을 알고 있던 그를 민족의 배신자라고 여긴 의사들이 모두 진료를 거부하여 귀국후 1년도 되지 않아 쓸쓸히 조국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소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에서 안준생은 이렇게 항변한다.

“아버지는 민족의 영웅이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영웅처럼 살 수 없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 내 아들은 의사입니다. 미국에서 제법 성공했고,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죠. 내가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모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한 덕분에, 내 자식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안준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행한 역사의 희생자라고 생각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만약 안준생이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 아버지의 길을 조금이라도 따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좀 해보았습니다. 

일제 말기에 친일시를 써서 친일시비에 시달렸던 서정주는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 줄은 몰랐다”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믿음으로 현실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말씀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여러분 인생의 염려는 주님께 맡겨 버리고 주님 주시는 평강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상을 살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나타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 설교

목록
번호 제 목 이 름 성경구절 날짜
»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베드로전서 5장 7~11절 20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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