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09-06 14:17

인생의 성공은 성품이 결정합니다.

박용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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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 후서 1장 5-11절

제목 : 인생의 성공은 성품이 결정합니다

날짜 : 2020년 9월 6일 프푸순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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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시는 한분 한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인생의 성공은 성품이 결정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92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젊은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 박사는 초중생 25만명중에 지능지수 135이상 되는 1521명의 영재들을 추려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평생을 추적했습니다. 터먼은 실험에 앞서 이 아이들이 각계의 최고 엘리트가 되어 성공적인 인생을 누리고 높은 직위를 갖게 되리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터먼 박사는 평생토록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학업, 결혼, 직장 생활등을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그는 1990년까지 69년 동안 3대에 걸친 일생을 추적 관찰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영재로 판명된 아이들의 성장은 애초의 가설과는 다른 결과를 보였습니다.그들 대부분은 자라서 엘리트가 되기는커녕 아주 평범한 직업인이 되었습니다. 판사와 주의회 의원 몇 명이 나왔을 뿐 전국적 명성을 얻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터먼 박사는 마침내 “성공은 지능이 아니라 성격과 인격, 기회포착력이 좌우한다”는 자신의 가설을 뒤집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를 살펴본 좋은 나무 성품 학교의 이영숙 대표는 성공의 으뜸 조건으로 좋은 성품을 꼽으면서 “성공은 스스로 처한 환경을 해석하고 느끼며, 반응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매순간 결정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부자 부모를 두지 못했다고 해서 높은 iq를 갖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버드대학 의과대팀은 2009년까지 ‘잘사는 삶의 공식’프로젝트를 72년간 진행하였습니다.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을 관찰 대상으로 선정하여 추적 관찰 연구를 진행한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케네디도 있었지만 3분의 1은 정신 질환 치료를 받는 사람이 됐고 마약  이나 알콜 중독에 빠져 사망에 이른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성공한 인생의 공식이 그냥 인간 관계라니 좀 허무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답이 보입니다. 하버드대 입학은 긴 인생에서 중간 경유지에 불과할 뿐인데, 대부분 낙제생들은 명문대 입학을 최종 목적지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비극을 맞게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 관계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능력은 오로지 그 사람의 성품에서 나옵니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성공을 이루는 목적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면 좋은 인간 관계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품은 우리 인생의 행복과 성공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루터 ‘한 나라의 국력은 군사력, 재력, 정치력이 아니라 훌륭한 성품을 가진 국민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작가이며 정치 개혁가인 사무엘 스마일즈는 “천재성은 항상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천재성만으로는 존경 받을 수 없다.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성품, 인격이다. 천재성은 지성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인격은 양심이 힘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성품은 이 세상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성품은 마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을 조절하는 힘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씀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서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하였고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 이유를 베드로 후서 1장 4절에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기를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신성한 성품, 즉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바라보지만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바라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그 성품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조롱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는 세상 가운데서 부당한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행실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로 삼으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구원의 기준은 될 수 없지만 전도와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신성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그 덕목들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복한 삶, 성공하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5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이라고 말씀합니다. 

 

지난 주에 기독교 믿음의 핵심이 뭐라고 말씀드렸는지 기억하시나요? 

 

베드로사도가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Du bist der Sohn des lebendigen Gottes.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 기독교 믿음의 핵심입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8~21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음을 믿고 구원받았음을 알고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 믿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졌던 본래적 지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26-27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갖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후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잃어버리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르는 삶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더 이상 이 세상의 정욕을 따르는 삶이 아닌 잃어버린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삶으로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강조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회복되었음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로마서 8장 39절에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믿음안에 있을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온전한 믿음안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덕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아레테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탁월성을 의미합니다.

 

이 덕은 당시 어떤 철학에서 말하는 인간 본연의 성품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한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이며 특징이 여기에서 말하는 덕입니다. 

 

에베소서 (엡 4:1-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덕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쉬운 삶이 아니라 힘들어도 좋은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덕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나의 모난 성품과 고집 불통과 이기적인 마음이 주님의 모습을 닮음으로서 나타나는 열매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덕에 지식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덕을 행할 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실제적 삶에서 드러내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여우와 두루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를 저녁 식사에 초대를 했는데, 여우가 사용하는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러나 부리가 긴 두루미는 납작한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화가난 두루미는 여우를 초대해서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대접을 합니다. 이번에는 여우가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먹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여우가 두루미를 좋은 마음으로 초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에서 지혜롭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대로 하다보니 서로 기분만 상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목적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 지혜롭지 못하다면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덕을 적용하는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6절을 보면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절제는 내부적으로 향하는 힘. 자제력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미덕이다.

 

이것은 자기 훈련이고 무절제한 육체적 방종을 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서 자기 방종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식 그 자체는 어긋나지 않으나 믿음 약한 형제를 고려하지 않는 자유로운 행동이 타인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다툼의 이유중 하나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였습니다. 

 

신앙이 강한 자들은 먹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신앙이 약한 자들은 죄를 짓는 듯한 찝찝함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시장에서 파는 고기도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서 초신자들은 항상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든 말든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고린도 전서 8:9에서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믿음이 굳건하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절제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덕을 온전히 세울 수 있는 방법이라면 절제는 덕을 온전하게 세울 수 있는 자세입니다. 

 

먼저 신앙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뿌리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절제의 미덕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말에 있어서 절제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말의 절제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3:2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말의 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말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벧전 4:11에서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절제의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그 다음이 인내입니다. 인내는 헬라어로 휘포모네입니다. 이것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아래에서 피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도 스토아 철학에서는 인내를 중요한 미덕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스토아 학파가 말하는 인내는 맹목적으로 운명을 감수하는 것이었습이다. 다시 말해 너의 운명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굳은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히 12:1~2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고난을 겪을 때, 거짓 교사들은 주님의 재림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거짓 교사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렸고 믿음의 경주에서 떠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더욱 요구되었던 것은 인내였습니다. 

 

인내는 절제력을 끝까지 유지시켜 주는 힘이며 이것이 없으면 결국 포기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을 바라보면서 인내로서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성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다음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입니다. 경건은 인간이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의 뜻에 겸손하게 복종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이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게 가져야 할 올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순종의 관계를 벗어나서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에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원망과 불평이 아닌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경건입니다. 

 

창세기 37장부터 나오는 요셉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누린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고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어린 아이가 형제들에게 버림받아 노예로 팔려갔을 때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창세기 39장 3절에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는 불행한 일을 겪었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삶의 형통하게 하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큰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더라도 경건의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상황을 통해 어떻게 일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만을 온전히 믿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7절에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합니다. 

 

형제 우애는 헬라어 필리아는 친구들간의 우정을 뜻합니다. 사랑은 아가페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말씀한다면 형제 우애와 사랑은 우리 이웃, 지체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2:37~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4장 20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다른 지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완성되어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우리의 믿음이 펼쳐지는 실제적 현장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실제로 드러내는 곳이 우리들의 일상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의 성품이 되도록 더욱 힘써 주님을 섬기며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고 매일의 삶에 그리스도의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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