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09-30 04:54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박용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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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후서 3장 1-2절

제목 :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날짜 : 2020년 9월 27일 프푸순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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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주간 평안하셨나요? 오늘 예배를 통해서도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중심으로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공이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우공이 산을 옮기다는 뜻입니다. 나이 90살이 가까운 우공이란 노인의 집이 두 개의 큰 산 사이에 있어 밖에 나갈때마다 불편함을 느껴 가족들과 산을 옮겨보자고 결정하고 우공의 가족들은 꾸준하게 산을 깎아 옮기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인도의 한 마을에서 있었습니다. 1960년 인도의 비하르 주에는 다시랏 만지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만지의 아내가 하루는 일을 하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데 전화조차 놓여있지 않은 시골이라 만지는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쉬지 않고 달렸으나 병원까지의 거리는 무려 55km이었기에 결국 아내는 중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만지는 자기 같은 희생자가 또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마을과 병원 사이를 막고 있는 돌산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가로지르면 병원까지는 거리는 15km로 몇 배나 가까워 졌기 때문인데 경사도 높은 돌산이라 너무나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지는 22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9미터 높이의 돌벽은 8미터 폭을 가진 110미터의 길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통해 훨씬 수월하게 병원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을 깍아 길을 만든 사나이라고 마운틴 맨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또 있습니다. 인도에 마주리섬이라고 있는데요. 한때는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있고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는 섬이었습니다. 그러다 벌목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고 나무가 사라지면서 홍스가 찾아오고 황폐한 사막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주리섬에서 태어난 자다브 파옝이라는 16세 소년은 황무지가 되어가는 섬을 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무를 심기시작했습니다. 37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무를 심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 없었지만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나무 심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실을 맺어 40년이 지난 지금은 울창한 숲이 되어 여의도의 2배 이상의 울창한 숲이 되었고 코끼리 호랑이 사슴과 새까지 이제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섬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한 사람의 포기하지 않은 마음이 큰 숲을 만들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9 Lasst uns also nicht müde werden, Gutes zu tun. Es wird eine Zeit kommen, in der wir eine reiche Ernte einbringen. Wir dürfen nur nicht vorher aufgeben! 고 말씀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는 것에는 힘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힘, 반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반드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반복의 힘을 통해 결실을 맺는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후서의 중요한 주제는 앎과 자람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절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서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앎으로 자라가는 것이 베드로후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 지식적으로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성장하고 자라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안에서 계속 자라가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베드로후서의 기록 목적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베드로 후서의 기록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1 Das ist nun mein zweiter Brief an euch, liebe Freunde. Ich wollte euch wieder an so manches erinnern, damit ihr auch in Zukunft aufrichtig und standhaft bleibt.라고 말씀합니다.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한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진실한의 헬라어는 에일리크리네인데 이 단어는 어떤 물체를 태양빛에 비추어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도자기가 흠집이 있는 상태에서 생산이 되었을 경우 양심적인 도공은 그 도자기를 부숴 버리지만 비양심적인 도공은 임시방편으로 그 흠을 왁스 같은 것으로 때우고 판매합니다. 물론 그 도자기는 사용하는 중 쉽게 깨져 버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는 사람이 그런 도자기를 구별해내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그 물건을 높이 들어 태양빛에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흠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디아노이아인데 이것은 신령한 분별력을 지닌 영적 기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일깨운다는 것은 이전에 흠이 없던 마음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다시금 깨긋하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후서 2장20절-22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는 것은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한데 개가 그 토한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누웠다 하는 말이 응하였다”20 Diese falschen Lehrer haben Jesus Christus als ihren Herrn und Retter kennen gelernt und sind dadurch der Verdorbenheit dieser Welt entronnen. Wenn sie sich aber dann wieder in die Sünde verstricken und von ihr gefangen nehmen lassen, so sind sie schlimmer dran als je zuvor. 21 Es wäre besser, sie hätten nie etwas von Christus[2] erfahren! Denn so haben sie ihn zwar kennen gelernt, sich dann aber doch wieder von den heiligen Geboten, die sie empfangen haben, abgewandt. 22 An ihnen bewahrheitet sich das Sprichwort: »Der Hund frisst noch einmal, was er herausgewürgt hat.« Oder das andere: »Auch ein gewaschenes Schwein wälzt sich wieder im Dreck.« Nichts anderes tun diese Menschen.고 하였습니다. 

 

나쁜 것에는 되돌아가고자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만들어가고 찾는 습성보다는 죄된 것, 안좋은 것으로 돌아가는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은혜를 누리며 살기보다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의 자리로 멀어지려는 습성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넘어가서 이전의 죄된 삶의 습성으로 돌아가 사는 것이 개가 토한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편지를 통해 반복해서 가르치며 까먹을만 하면 깨닫게 하고 잊을만 하면 생각나게 해서 다시 은혜의 자리 복음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43-45절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12: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43 »Wenn ein böser Geist aus einem Menschen ausgetrieben wird, irrt er in öden Gegenden umher auf der Suche nach einem neuen Zuhause. Findet er keins, 44 entschließt er sich: ›Ich will dorthin zurückkehren, woher ich gekommen bin.‹ Wenn er zurückkommt und seine frühere Wohnung sauber und aufgeräumt, aber verlassen vorfindet, 45 dann sucht er sich sieben andere Geister, die noch schlimmer sind als er selbst. Zusammen ziehen sie in den Menschen ein, der nun schlechter dran ist als vorher. Genauso wird es auch dieser bösen Generation ergehen.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빈집의 비유입니다. 더러운 귀신에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쫓겨나간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하고 돌아와 보니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으나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 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사람의 처음 귀신들린 형편보다 나중 형편이 더욱 심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냈으면 참된 주인을 모셔야 하는데 빈 집 그대로 놓아두니 귀신이 되돌아왔고 다시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온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라”17 Mein Gebet ist, dass Christus durch den Glauben in euch lebt. In seiner Liebe sollt ihr fest verwurzelt sein; auf sie sollt ihr bauen.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귀신을 쫓아냈으면 빈집으로 두지 말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빈집 교인도 있습니다. 빈집 교인은 형식과 의식적으로 교회에 나오지만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성도입니다. 

 

어떤 교인은 별장 교인입니다. 별장은 1년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곳입니다. 교회에 크리스마스때, 부활절, 특별한 계절에나 한번씩 들어와 보고 나가는 별장 교인, 이 사람들도 빈집 교인입니다. 

또 어떠한 사람은 주말 교인입니다. 주말에 한번씩 찾아가는 주말 교인, 주말에 교회에 한번 와보고 요즘같은 때는 주님 안녕히 계세요, 2주후에 뵈어요 하는 성도입니다. 

 

빈집의 성도가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개, 돼지가 도로 돌아가는 것 같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빈집의 성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루를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단 하루면 됩니다. 단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 하루를 주님을 모시고 살면 됩니다. 

 

그럼 단 하루를 주님을 모시고 살려면 어떻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깨닫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우리의 생각과 결심으로 나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동합니다. 더 중요한 일, 더 유익한 일을 합니다. 

 

돌산을 깎아 길을 만드는 것도 사막이 되는 섬에 나무를 수 십년동안 심는 것도 상황을 보고 깨닫고 결단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삶을 더 풍성하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민감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은혜가 무엇일까를 깨닫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이에요.  

 

오늘날은 미디어의 발달로 훌륭한 설교 말씀을 언제나 어디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많이 듣고 알아도 실제로 삶이 말이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듣고 흘려버리기 때문이에요.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깨닫고, 나의 삶에 적용하며 결단하고 행동함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듣는 말씀은 많지만 변화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거에요.

 

설교 시간은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회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에요. 그 시간에 성경에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리고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듣고 깨닫고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실제로 적용하고 결단하는 것으로 이어질 때 우리 삶에 변화를 체험할 수 있어요. 

 

요즘 설교를 온라인 예배를 준비하고 설교 영상을 편집하면서 참 많이 반성합니다. 정말 말을 못하는구나, 말이 간결하지도 않고 말이 논리적인 것 같지도 않고 참 성도들 힘드시겠단 반성을 합니다. 더 잘 준비해야 겠다는 결심과 창피한 마음을 같이 갖습니다. 

 

그래서 주일 설교 잘 듣고 요약하고 깨달은 것 적고 적용하고 결단을 적으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참 창피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고 말투나 단어가 아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듣고 깨닫고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말씀의 힘을 가질 수 있고 변화시키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흘려버리지 말고 말씀을 들을 때 깨닫게 하시고 적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을 빈집으로 두지 않고 예수님으로 채울 수 있도록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명하신 것을 기억하라

2절을 보면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하노라”2 Vergesst nicht, was schon die Propheten Gottes vor langer Zeit gesagt haben! Erinnert euch an die Weisungen unseres Herrn und Retters Jesus Christus, die euch die Apostel weitergegeben haben.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거짓 가르침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악한 세대를 이기고 소망 가운데서 살게 하려는 목적으로 쓰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12 Gottes Wort ist voller Leben und Kraft. Es ist schärfer als die Klinge eines beidseitig geschliffenen Schwertes, dringt es doch bis in unser Innerstes, bis in unsere Seele und unseren Geist, und trifft uns tief in Mark und Bein. Dieses Wort ist ein unbestechlicher Richter über die Gedanken und geheimsten Wünsche unseres Herzens.고 말씀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번개와 천둥처럼 자기에게 다가와서 믿음을 주실 줄로 생각을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천둥이 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로마서 10장 17절의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7 Es bleibt dabei: Der Glaube kommt aus dem Hören der Botschaft; und diese gründet sich auf das, was Christus gesagt hat.는 말씀을 읽고 나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그 믿음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복음을 전하는 부흥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들음은 단순히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나 예배시간에 듣는 설교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성경 시대의 배경을 좀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시대에는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성경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두루마리 성경은 아무나 소유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비쌌습니다. 양피지에 적힌 두루마리 성경은 1년치 봉급을 모아야 간신히 살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두루마리 성경은 회당에나 있었고, 부자들 중에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만 예외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회당에 가서 말씀을 듣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된 두루마리 성경을 읽고 통역해 주는 서기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가 페르시아 제국 때 고국으로 돌아온 귀환민들은 이미 히브리어를 잊고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성서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려면 회당에 가서 서기관이 읽고 통역해 주는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책과 필기도구가 많지 않았던 성서시대의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유일한 방법은 말씀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스승의 입장에서 최고의 덕목은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 수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묵상은 조용히 말씀을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라면 당시에는 입으로 말씀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며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이렇게 반복해서 듣고 중얼거리며 암송하며 마음에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반복해서 듣고 외우고 마음에 새길 때 믿음이 자라고 말씀이 실제적 삶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한번 듣고 흘리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중얼거리고 외우고 마음에 새겨서 말씀의 능력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득채워지면 우리는 두려움과 절망이 아닌 소망과 용기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김기현 집사님이 있습니다. 의료사고로 중도시각장애인이 된 후 재활상담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참 잘했고 외교관을 꿈구며 대학에 들어갔는데 1학년 여름방학 때 턱부정교합 수술을 받는 도중, 의사의 과실로 기도가 막혀 3분간 질식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시각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이후 피눈물 나는 재활로 전신마비 증상은 나아졌지만,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눈 수술을 위해 유명한 외국 병원에도 갔었지만, 뇌 사진을 본 의사들은 움직이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며 그녀를 돌려보냈습니다. 갑작스레 다가온 인생의 풍랑 앞에 무당을 찾아가 굿도 했고, 자살하려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다 4년 만에 학교에 복학, ‘성서와 기독교’라는 기독교 교양수업을 듣던 중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녀를 움직인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습니다. 이후 침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믿음을 가진 후,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되었습니다. 배우자 기도를 하던중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유학을 가서 재활 상담학 공부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아도 진정한 힘은 우리의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과 마음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우리 마음을 무너뜨리고 이전의 부정적인 삶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려는 힘이 존재합니까? 

 

오늘 예배를 통해서 사람의 감각, 상황,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믿는 모습이 회복되고 특별히 나에게 능력으로 응답으로 다가오는 레마의 말씀을 받아 날마다 승리하는 복된 살이 더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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