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10-04 15:17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박용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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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후서 3장 8-16

제목 :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날짜 : 2020년 10월 04일 프프순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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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온라인 예배를 통해서도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응답하심의 은혜를 얻는 시간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이후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의심입니다. 정말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 살아나셨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의심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런 의심은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 품을 수도 있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동안 그리고 열심히 했던 사람도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사랑의 적은 의심이라고 의심이 가득하면 관계는 깨지게 됩니다. 하지만 의심을 넘어서면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의심을 넘어 온전한 믿음으로 자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의심의 문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혔갔던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에 그들의 삶은 황폐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과 다윗 왕조를 선택했다는 것에 바탕을 둔 소망들이 머지않아 성취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소망속에서 성전 재건 공사를 독려하였고 성전 재건 공사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힘을다해 성전 재건 공사를 끝마쳤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학개와 스가랴가 강조한 메시아적 소망은 당장에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권은 재건되지 않았고 약속의 시대는 오지 않았습니다. 한껏 기대했다가 기대가 꺽여 버리자 백성들은 감당하기 힘든 실의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런 실망은 의심을 낳았고 의심은 환멸을 낳았고 환멸은 신앙적인 방종을 낳았습니다. 

 

자기 직무에 싫증이 난 제사장들은 여호와께 병들고 흠있는 짐승들을 바치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율법을 집행할 때 편파적인 처사를 함으로써 성직의 품위를 실추시켜 백성의 빈축을 샀고 사람들은 십일조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직무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도덕적 타락을 가져왔고 고용인의 임금을 속여 착취하고 힘없는 동포들을 등쳐먹으며 자신의 이익을 채웠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런 것을 지적했던 마지막 선지자가 말라기였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감옥에 갇힌 침례 요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감옥에 갖혀있던 침례요한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며 오실 그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에게는 두 종류의 메시야 사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강력한 왕으로서의 메시아이고 또 하나는 섬기는 종으로서의 메시야입니다. 이 두 종류의 메시야상은 선지서에서 동시에 그려져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메사아에 대한 온전하고도 입체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이 살던 시대의 유대인들은 왕으로서의 메시아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섬기는 종,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닌 다윗과 같은 강력한 왕으로서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침례요한도 강력한 왕으로서의 메시아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일은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자신이 기대하던 메시아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이 정말 약속하신 메시아이신지를 의심하며 제자들을 통해서 “오실 그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침례 요한의 이런 모습을 보면 신앙 생활에서 의심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이런 믿음의 의심을 품게 될까요? 

 

보통 자신이 기대한 것과 다른 결과를 얻을 때 의심이 생깁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내가 원하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의심의 마음이 생깁니다. 때로는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할 때도 믿음의 의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믿음의 삶을 살면서 찾아오는 고난의 문제 때문에 의심을 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나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마음을 작정하여 기도하고 예배해도 삶에는 달라짐이 없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기는 하시는 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 믿어도 별로 열심히 믿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 같을 때 믿음의 사람들이 더 어려움을 겪을 때 이런 의심이 찾아오기도 한다. 

 

여러분은 믿음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런 의심을 품어본적은 없으십니까? 

 

이런 신앙의 의심은 베드로후서에서도 나타납니다. 당시 성도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힘든  고난을 이겨 내면서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3장 4절을 보면  놓는 거짓 선지자들은 “그가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어?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똑같이 이렇게 그대로 있는데?”라며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믿음의 의심을 주는 자가 아니라 의심을 넘어 확실한 믿음을 갖도록 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신앙의 의심에 빠질 수 있는 위기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나아가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베드로사도는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시편 90편 4절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시 90:4에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사도가 시편 90편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시편 90편에서 말씀하는 다섯 가지 사항을 말하기 위함이다. 

첫째는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시편 90:2절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유한한 시간 밖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창조자 되신 하나님입니다. 땅과 세계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조롱하는 자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음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절에 “주께서 사람들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8절 9절에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죄에 대해 심판의 말씀을 할 권리가 없으시다고 주장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가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7절에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소망을 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이 심판의 말씀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구원의 말씀을 실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섯번째는 도덕적이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두려워할 것이며 자신들의 행동을 수정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90편 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사도가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같다는 말씀을 인용하는 이유는 베드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영원하신 창조주로서 그분의 도덕법에 따라 심판하시며 그분의 언약적 사랑에 따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여 믿음의 경주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기 보다는 우리 삶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의 감각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몸부림이라는 책에보면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 시작되면 사람들에게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나는 지금까지 실천해 온 신앙 생활에 대한 의심이며, 다른 하나는 회심하기 전의 지나간 화려했던 시절로 회귀하고 싶은 충동이다. 의심은 지금까지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실망에서 생겨난다. 까닭 없이 고난의 밤을 맞이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무슨 잘못을 했는가'라는 생각과 아울러 하나님의 은혜가 엷어지기 시작하면서 기도생활이 눈에 띄게 저하된다. 하지만 이미 진행 중인 하나님의 청소 작업은 강화되고, 하나님은 더욱 세차게 우리 내부를 비추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하나님에 대한 어떤 지식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로 아삽은 다윗의 참모였고 성가대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자신이 곡을 지어 찬양하기도 했고 주로 다윗이 시를 지으면 여기에 곡을 붙여 예배 때에 전체가 함께 부를 수 있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편 73편 1~16절을 보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고자 애쓰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 몸도 마음도 병들어 있는데,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교만하고 남들을 학대하는 자들은 분에 넘치도록 부유함을 누리고 죽을 때까지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믿는 자가 화를 당하고 안믿는 자가 복을 받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니 불의한 것 불공평한 것 불신앙인 것이 더 형통한것같고 복을 누리는 것 같다고 시인은 한탄하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에서 하나님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했던 시인이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세상의 악인들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종말이 있고 심판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그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더 잘사는 것 같고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들에게는 심판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고 신뢰하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각이 앞서지 않고 베드로사도가 가르쳐주듯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한번 깨닫고 마음에 새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베드로사도는 하나님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너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다시 온다매 왜 안오냐며 조롱하는 목소리에 베드로사도는 더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이 지금 참고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9절을 계속보면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래참으사의 헬라어 단어 마크로뒤메오는 인간을 향하여 진노를 자제하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마이클 그린은 “이 구절의 당연한 논리적 결과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강림하시기 전의 시간을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는지 이유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남은 시간을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파하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이 참 약해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크게 다름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때를 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믿는 사람들이 힘을 잃고 조롱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우리의 믿음을 우습게 여길 때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욱 당당하게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베드로사도는 주님은 갑자기 오신다고 말씀합니다. 

10절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라고 말씀. 재림은 준비하지 않은 자들에게 마치 밤의 도적처럼 갑자기 재앙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때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갈 것이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이다. 우주적인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땅이 드러날 것이고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일어날 것이고, 재림과 심판을 통해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사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1:20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소망안에서 믿고 기대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의심하지 말고 아멘으로 대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절 12절에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말에 넘어가지 말고 지금 우리에게 주신 삶을 거룩한 행실로 예수님을 닮아가며,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의심속에서 살지 말고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서 힘차게 믿음의 경주를 하며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의심속에서 지었던 시편 73은 28절에서 “그러나 나는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주 하나님을 믿어 왔기에 주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다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못했던 도마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여러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의심에서 확신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땅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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