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11-24 22:25

은혜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박용식 목사
댓글 0

본문 : 룻기 3장 1-5절

제목 : 은혜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날짜 :2020년 11월 22일 프푸순 주일 예배

************************************************************************

할렐루야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며 믿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시는 모든 것에 넉넉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어떻게 저런 힘든 일을 겪으면서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다니엘 기도회 영상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설교전에 사랑의 헌금을 드리는 시간있습니다. 헌금 전에 사랑의 헌금 대상자들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는 영상을 방영하였습니다. 

 

그중에 은주네 가족이 있는데요. 어느날 주차된 전기 오토바이가 폭발하면서 네 가족은 순식간에 모두 정신을 잃은 채 중증 사고를 입었습니다. 이 사고로 부부와 어린 남매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은주의 오빠는 치료 도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폭발한 전기 오토바이는 엄마가 출퇴근용으로 구입한 것인데, 아이들의 엄마는 아들의 죽음앞에서 오토바이만 사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자책을 합니다. 

 

화상으로 세 손가락을 절단한 은주는 화상으로 변해 버린 엄마의 얼굴을 보며 울음을 떠뜨렸습니다. 반복되는 피부 이식 수술과 화상 치료, 죽음 보다 더 한 고통을 온 몸으로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매달 나오는 입원 치료비만 천만원이 넘고, 앞으로 남은 수술과 치료비는 물론 양말 공장 근로로 생계를 이어가는 은주네는 퇴원후 돌아갈 집도 없고, 내일을 살아갈 생계비조차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갖고 어려움을 이기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는 이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큰 고통을 겪지 않았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과 기도의 제목은 이런 분들에 비하면 참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16 Seid einmütig untereinander! Strebt nicht hoch hinaus und seid euch auch für geringe Aufgaben nicht zu schade[2]. Hütet euch davor, auf andere herabzusehen.고 말씀합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차적으로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잘난 사람인 듯이 다른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는 우리의 삶의 태도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는 비겔란 조각 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비겔란의 수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높이가 약 17m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상 모놀리트입니다. 이 조각상은 121명의 남녀가 엉켜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조각상에서 표현한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물질과 좋은 환경속에 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런 욕망이 있기에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고 더 노력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높은 것을 향한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은 지금의 삶에 대한 소중함이나 감사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중국에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처럼 우리가 혼자서 일어나고, 걷고, 숨쉬고 먹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기적이며 감사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높은 데 마음을 두면 우리는 이런 것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마음, 나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두면서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며 살뿐만 아니라 연약한 자들에게 힘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낮은 데에 우리의 마음을 두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내가 겪는 문제, 내 삶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자기 자신이 당하는 고통”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남의 염병이 내 감기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자기가 겪는 고통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오토바이가 터져서 온가족이 화상을 입고 병원비 생활비가 없어서 고통을 받는 소식을 들어도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생활비 문제, 아이들 문제, 건강 문제가 더 크고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인생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문제를 잘 다스리고 해결하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 그것은 참고 사항일뿐입니다. 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간증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교회를 나와도 어떤 삶의 변화도 은혜도 응답도 내가 체험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경험한 기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히려 저들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이 나에게는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섭섭하고 실망스럽기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내 문제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든 못얻든 우리는 하나님을 간증하는 간증의 주인공,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여러분 오늘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나에게 말씀하시고 내 문제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면에서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나오미와 룻의 응답은 우리들의 응답입니다. 룻의 이야기는 절망에서 건지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번 받은 축복, 은혜에 만족하지 않고 축복의 근원을 얻기 위해 힘쓰는 나오미와 룻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룻과 같이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소중히 여기는 헤세드의 마음을 품어라

 

1절을 보면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1 Eines Tages sagte Noomi zu Ruth: »Ich möchte dir helfen, einen Mann und ein neues Zuhause zu finden, damit du gut versorgt bist.고 말씀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내 딸아! 라는 자상하고 애틋한 말로 부르면서 안식할 곳을 찾아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고백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가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결혼이었습니다. 

 

내 딸이라고 부르는 것은 친정어머니가 자기 딸을 대하듯이 룻을 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따라와서 생계를 책임지는 룻을 불쌍히 여기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나오미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룻을 딸처럼 여겼고 진심으로 룻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딸과 며느리는 다르다고 합니다. 아무리 시어머니가 딸처럼 여기겠다고 해도 절대로 딸이 될 수 없는 입장이 며느리입니다. 

 

딸은 방에 누워있다가 엄마가 밥먹어라 하면 나와서 밥 먹고 다 먹은 그릇 싱트대에 던져두고 다시 방에 들어가고 설거지도 가끔 하고 싶을 때 하지만 며느리는 시부모님 눈치를 보며 가시 방석에 있다가 재빠르게 상도 차리고 밥도 미소 띄우면서 열심히 먹고 나면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합니다. .

 

딸은 엄마한테 서운한게 있으면 바로 얘기하고 울며 불며 싸우지만 며느리는 서운하고 힘든 점이 있으면 속끓이다가 남편을 잡는답니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이지 결코 딸처럼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나오미가 룻을 딸로 여기고 룻이 나오미를 어머니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서로를 향한 헤세드의 마음 때문입니다. 

 

나오미에게는 이해심, 배려심, 동정심이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며느리를 맞아서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며 이해하며 함께 살았고 두 아들이 죽고 난 후에는 그들의 앞길을 열어 주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두 며느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며느리들의 상황을 동정하였습니다.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룻도 이해심, 배려심, 공경심으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혼자된 시어머니를 혼자 보내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며 일하면서 돌보았습니다. 

 

자식은 생명을 나누었기에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잘못하는게 있어도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남의 자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고 배려하고 동정하지 않으면 공경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어머니는 남의 엄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고 배려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이 또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관계에서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는 다 남이기에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동정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서로를 존경하며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른 세대는 자녀들 세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동정하며 축복하고 자녀들 세대는 어른 세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 Wir, die einen starken Glauben haben, sind dazu verpflichtet, auf die Schwachheit der anderen Rücksicht zu nehmen und nicht an uns selbst zu denken.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공감하며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제일 화나는 조언이 한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열받게 하려는 조언은 아니고 위로하려는 조언이지만 사실은 아주 신경질나고 화나게 만드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뭐냐면요.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은데 그 정도도 못견뎌서 그러냐”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더 힘든 사람도 많고 어찌보면 별 고민같지 않은 것으로 힘들어 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민 같지 않은 것이라도 당사자에게는 힘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위로하는 역할이 신앙의 어른의 역할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며 공감하며 배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오미가 룻을 딸과 같이 여기며 그 앞길을 배려하며 축복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배려하며 축복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더욱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 받을 준비를 하라

 

2절에서 3절을 보면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라”2 Du hast doch mit den Mägden von Boas zusammengearbeitet, er ist ja unser Verwandter. Nun hör gut zu: Heute Abend ist er auf seinem Dreschplatz und trennt die Spreu von der Gerste. 3 Nimm ein Bad, verwende duftende Salben, zieh dein schönstes Kleid an und geh dorthin! Pass auf, dass er dich nicht entdeckt, bevor er gegessen und getrunken hat.고 말씀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나안에서 보리 까불기는 추수가 모두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는 5월 말이나 6월에 행해졌습니다. 까불기가 뭐냐면요, "키"에다 곡식을 올려 놓고 위아래로 열심히 흔드는 것을 "까부르다" 또는 "까불다"라고 하는데, 곡식에 섞여 있는 겨나 티 같은 것을 날려 보내기 위해서 곡식 키를 흔드는 것을 까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낮에는 강한 바람이 불수 있지만 밤에는 순풍이 불어 곡식 까불기를 하기에 좋기에 밤중에 곡식 까불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타작 마당은 마을로 들어가는 성문 근처에 있거나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나면 집으로 못가고 일하던 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나오미는 이 때를 기회 삼아 룻이 보아스에게 가도록 했는데 3절을 보면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제 죽은 남편에 대한 애도 기간을 끝내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라는 것으로 이제 묵은 때를 벗어 버리고 다시 한번 평범한 삶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 의미는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고 치장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아스에게 은혜를 얻기 위해 룻에게 새로운 출발을 위한 마음을 준비 하며 겉모습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아무나 은혜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을 준비된 사람이 은혜를 얻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왕의 혼인잔치 비유가 나옵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초청받은 사람들은 밭으로 자기 사업으로 가고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화가난 임금은 그들을 진멸하고 이번에는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사람들을 초청해서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왕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왕이 준비한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그들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데에 내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22장 14절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 Denn viele sind eingeladen, aber nur wenige sind auserwählt고 말씀합니다. 

 

잔치에 초청을 받았어도 준비된 예복으로 갈아입지 않는자들은 다 쫓겨났습니다.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14 Legt all das ab und zieht Jesus Christus wie ein neues Gewand an 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은혜 받을 준비된 자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17 Ich liebe den, der mich liebt; wer sich um mich bemüht, der wird mich finden.고 말씀합니다. 

 

 

시편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81: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10 Du sollst keine anderen Götter neben mir haben, wie sie bei fremden Völkern verehrt werden – bete solche Götzen nicht an! 11 Denn ich bin der HERR, dein Gott, ich habe dich aus Ägypten herausgebracht. Von mir sollst du alles erwarten, und ich werde dir geben, was du brauchst!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은혜 베푸시고 복주시기를 원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를 얻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며 기대하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은혜 베푸시고 응답하십니다. 

 

은혜받을 준비된 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을 내것으로 만드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무조건 순종함으로 반응하라. 

5절을 보면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5 »Gut«, erwiderte Ruth, »ich will deinen Rat befolgen.고 말씀합니다. 

 

4절까지 나오미가 룻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려준 말씀이고 5절부터는 나오미의 조언대로 순종하며 행동하는 룻의 모습이 나옵니다. 

 

4절을 보면 어둠을 틈타서 몰래 보아스의 처소에 들어가라는 조언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경우 보아스가 나오미의 계획대로 반응하지 않을 경우 룻은 부도덕한 여자로 소문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의 판단을 신뢰했고 그의 말에 순종함으로 반응하며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순종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순종은 내 생각이나 의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에 순순히 따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믿음의 반응입니다. 믿음의 대상을 온전히 믿고 신뢰할 때 나타내는 반응이 순종입니다.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이 순종입니다. 

 

온전한 순종은 힘들지만 하나님은 순종함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의 순종하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9 Oder anders gesagt: Durch Adams Ungehorsam wurden alle Menschen vor Gott schuldig; aber weil Jesus Christus gehorsam war, werden sie von Gott freigesprochen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2절에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 »Leg das Messer beiseite und tu dem Jungen nichts! Denn jetzt weiß ich, dass du Gott gehorsam bist – du hättest deinen einzigen Sohn nicht verschont, sondern ihn für mich geopfert!고 말씀합니다. 

 

100세의 나이에 낳은 소중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순종하였을 때에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런데 룻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나오미의 말에 순종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 “여러분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책임진 자들이기에 여러분을 주의해서 살피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일을 괴로워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들의 일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17 Hört auf die Leiter eurer Gemeinden und ordnet euch ihnen unter. Sie müssen einmal Rechenschaft über euch ablegen, denn sie sind für euch verantwortlich. Macht ihnen das nicht zu schwer; sie sollen doch ihre Aufgabe mit Freude tun und sie nicht als eine bedrückende Last empfinden. Dies würde euch nur selbst schaden.라고 말씀합니다. 

 

때로는 직통계시라는 이름하에 부   당하고 비상식적인 것을 요구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의 은혜를 얻는 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생각과 시간과 물질을 내려놓고 순종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룻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를 순종의 길로 나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안에서 순종함으로 반응할 때 간증의 주인공,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 설교

목록
번호 제 목 이 름 성경구절 날짜
117 새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레위기 16장 29~34절 2021.01.03
116 에벤에셀의 하나님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사무엘상 7장 12~14절 2020.12.27
115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히브리서 9장 23~28절 2020.12.13
114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신 하나님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룻기 4장 9~17절 2020.12.06
113 기다림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룻기 3장 14~18절 2020.11.29
» 은혜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룻기 3장 1~5절 2020.11.22
111 기업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룻기 2장 17~23절 2020.11.15
110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룻기 2장 1~13절 2020.11.08
109 집으로 가는 길 영상보기 새창 박용식 목사 룻기 1장 6~14절 2020.11.01
게시물 검색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