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12-11 06:11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신 하나님

박용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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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룻기 4장 9~17절

제목 :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날짜 :2020년 12월 6일 프푸순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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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한주간 평안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 주님 앞에 달려나온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임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역경을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토마스 에디슨은 '구제불능의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중학시절 수학 성적은 낙제점이었습니다.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때 후보선수로 전전하다가 결국 팀에서 쫓겨났습니다.

 

알렉스 헤일리는 '뿌리'의 원고 보따리를 들고 4년 동안이나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주위의 냉소적인 태도에 충격을 받아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디즈니랜드'를 설립한 월트 디즈니는 무려 다섯 번이나 파산한 정리해고자 출신입니다. 잭캔필드의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는 무려 33개의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습니다.

 

꼭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도 역경을 이기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마음의 근력 혹은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교 교육 대학의 심리학 교육학 교수인 수니아 푸터는 회복 탄력성을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나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개인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앤드류스 대학의 심리학자 재닛 레데스마는 역경 좌절, 불운의 상황에서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오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회복 탄력성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 부정적 감정으로 삶이 멈춰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마음의 힘을 의미합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세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둘째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셋째 얼마든지 문제를 이길 수 있다고 믿는것입니다. 

 

이 세가지 태도를 가진 사람이 역경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룻은 높은 회복 탄력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룻은 삶의 문제를 겪을 때 죽은 남편을 원망하거나 시어머니를 원망하거나 자신에 대해서 자책하지도 않았습니다. 

 

룻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묵묵히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볼때는 룻이 성공한 인생을 살아야지, 열심히 이삭줍기를 해서 보란 듯이 크게 성공할거라는 큰 꿈을 갖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룻과 같은 상황에서는 성공을 꿈꾸는 게 오히려 더 지치게 만들 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꿈꾸는 성공이 너무 멀리 있으면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룻기 3:11을 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안다”Jeder hier in Bethlehem weiß, dass du eine ehrbare junge Frau bist. 고 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 말하는 것을 볼 때 룻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어진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주어진 하루를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럼 회복 탄력성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감사의 태도에 있습니다. 

 

탈무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만일 다리 한쪽을 잃었다면 하나님께 두 다리를 잃지 않았음을 감사하십시오. 만일 두 다리를 잘렸으면 하나님께 목이 부러지지 않았음을 감사하십시오. 만일 목이 부러져 버렸으면 그 뒤는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갈 수 있음을 감사할 테니까요.”

 

오늘 우리에게게 가장 필요한 것은 회복 탄력성입니다. 주어진 하루를 감사의 태도로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금 매일 들려오는 소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움츠러 들게 만듭니다.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많이 늘어나니 가까운 사람들이 감염되었다는 소식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소식을 들으면 더 불안해 지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의 삶이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회복 탄력성을 키워서 이 시기를 잘 보내고 주어진 하루를 잘 보내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룻은 마침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2 Glücklich ist, wer die Bewährungsproben besteht und im Glauben festbleibt. Gott wird ihn mit dem Siegeskranz, dem ewigen Leben, krönen. Das hat er allen versprochen, die ihn lieben.고 말씀합니다. 

 

룻은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서 마침내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한분 한분이 이 어려운 시기를 믿음으로 이겨서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축복의 주인공, 간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아무개와 보아스의 선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3장에서 보아스는 현숙한 여인인 룻의 가정에 대한 기업을 무를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4장 1절에서 4절을 보면 보아스는 아무개라 부르는 가까운 친족에게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레 멜렉의 소유지를 팔려하니까 만일 네가 그 밭을 사고 싶으면 여기 앉은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도록 해라, 그러나 네가 사고 싶지 않으면 즉시 나에게 말해라 네가 그 밭을 사지 않을 경우에는 내가 사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 밭을 살 권리는 너에게 우선권이 있고 그 다음에는 나에게 있다고 설명합니다.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땅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것은 합의된 사용료를 선불로 받고 일정 기간 동안 그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한다는 의미인데 나오미가 땅의 경작권을 내놓았다는 것은 엘리멜렉이 떠나기 전에 이미 남에게 팔아 버린 땅의 경작 권한을 되찾으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그 권한을 다시 사올 여력이 없기 때문에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의 권한에 따라 값을 치루고 그 땅의 권한을 다시 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가장 가까운 친족인 아무개는 내가 무르리라Der Mann antwortete: »Gut, ich will es tun.고 합니다. 

 

아무개가 기업을 물겠다고 한 이유는 고엘의 의무를 충실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기업을 무르겠다고 한 사람은 그 집안 여인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남편 없이 홀로 된 여인을 아내로 맞아 자녀를 낳아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자기 자식이 아니라 죽은 이의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훗날 재산을 분배할 때 죽은 자의 이름으로 낳은 그 아들에게도 똑같이 분배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나오미의 기업을 무른다면 자식이 없는 나오미의 기업은 영원히 자기 가문의 재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미 나오미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나오미와 계대 결혼을 한다고 해도 엘리멜렉에게 속할 아이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5 Boas aber erwiderte: »Wenn du von Noomi das Grundstück erwirbst, musst du auch die Moabiterin Ruth heiraten, um mit ihr einen Sohn zu zeugen. Er soll als Nachkomme ihres verstorbenen Mannes gelten und eines Tages das betreffende Feld erben, damit es im Besitz dieser Familie bleibt.라고 말씀합니다. 

 

쉬운 성경으로 보면 “그런데 네가 나오미에게서 그 밭을 살 경우에는 모압 여자 룻과 결혼하여 죽은 그 여자의 남편 이름으로 그 유산을 이어받을 자식을 낳게 해 주어야 한다.”고 표현합니다. 

 

룻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유산을 분배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룻과 결혼해야 하며, 그와 룻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가 엘리멜렉의 아들로 취급되어 땅의 상속자가 됩니다. 비록 자기 아들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는 남의 집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일이 이렇게 된다면 그에게 엄청난 손실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25:6)에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6 Der erste Sohn, den sie dann zur Welt bringt, soll als Sohn des Verstorbenen gelten, damit sein Name in Israel weiterlebt.고 말씀합니다. 

 

계대 결혼의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름과 존재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자손들 속에서 계속 계승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남자 상속자가 없다는 것은 자손과 함께 그의 이름도 영원히 지워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대 결혼을 통해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손의 끊어짐은 그 사람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했고 이것은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자손에 의해 그 이름이 영영히 존재하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계대 결혼을 통해 죽은 자의 이름을 세움으로써 저주와 슬픔속에서 벗어나 축복과 회복과 기쁨의 자리로 옮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율법의 정신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이익이냐 손해냐만을 생각하면서 기업을 무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아무개와 반대로 보아스는 증인된 장로들 앞에서 룻을 아내로 맞아 죽은 자의 기업을 세울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9절과 10절을 보면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라9 Der wandte sich an die führenden Männer von Bethlehem und an die übrigen Versammelten: »Ihr seid heute meine Zeugen, dass ich von Noomi alles erworben habe, was ihrem Mann Elimelech und seinen Söhnen Kiljon und Machlon gehörte. 10 Damit habe ich auch die Verpflichtung übernommen, Machlons Witwe, die Moabiterin Ruth, zu heiraten und einen Sohn zu zeugen, der als Nachkomme von Machlon gilt. So wird der alte Erbbesitz in der Familie des Verstorbenen bleiben. Sein Name soll in unserer Sippe und bei den Einwohnern von Bethlehem niemals vergessen werden. Dafür seid ihr Zeugen!고 말씀합니다. 

 

 

손해냐 이익이냐를 생각하면 보아스 입장에서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기업을 물러주고 나중에 자녀라도 생기면 자녀에게 재산도 상속해주어야 합니다. 법적으로 내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자식입니다. 나오미도 그의 몫으로 돌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이익과 손해를 따르지 않고 율법의 정신에 따라서 계대 결혼을 하며 기업을 물었습니다. 

 

21절 22절을 보면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Salmon, 21 Boas, Obed, 22 Isai und David.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계보에 보아스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당시 법대로라면 보아스가 낳아준 아들 오벳은 보아스의 이름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라 말론이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율법의 정신을 알고 헤세드의 마음을 베풀었던 보아스의 이름을 말론의 자리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 5절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5 Boas – der Sohn von Rahab –, Obed – der Sohn von Ruth –, Isai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보아스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헤세드의 마음을 베풀었던 보아스를 높고 귀하게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10 Will man aber irgendwo nichts von euch wissen, dann geht durch die Straßen der Stadt und sagt den Einwohnern: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늘 나라 생명책, 호적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것은 참 손해가 많은 일입니다. 여성분들 말씀하시기를 집안일 해봤자 티도 안나고 힘만들고 뭐하는게 있냐고 인정 받지 못한다고 하시는데 교회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티도 안나고 뭔가 펑크나면 째려보고 잘했다고 칭찬도 많이 못받는 것 같고 그래도 안하면 당장 집안 더러워지듯이 교회일도 삐끗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이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교회일, 하나님이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일, 예배를 준비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 나왔는데 달라지는 것도 없고 좋은일도 없고 예배가봤자 얻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아무개와 같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십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이끄는 삶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삶의 원동력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수백가지의 상황, 가치 그리고 감정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워렌 목사가 오래전에 썼던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보면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다섯가지에 이끌려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에 의해 끌려 다닙니다. 

2. 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살아갑니다. 

3.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4.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5.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 고민하는 것은 이런 범주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런것들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이사야서 61장 3절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 Vorbei ist die Leidenszeit der Einwohner Zions! Sie streuen sich nicht mehr voller Verzweiflung Asche auf den Kopf, sondern schmücken sich mit einem Turban. Statt der Trauergewänder gebe ich ihnen duftendes Öl, das sie erfreut. Ihre Mutlosigkeit will ich in Jubel verwandeln, der sie schmückt wie ein Festkleid. Wer sie dann sieht, vergleicht sie mit Bäumen, die Gott selbst gepflanzt hat[3]. Man wird sie »Garten des HERRN« nennen, an dem er seine Größe und Macht zeigt.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슬픔,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삶이 사명을 위한 삶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 건강, 시간, 직장, 재능등을 갖게 하신 목적을 알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사명을 이루는 삶입니다.

 

아무개는 돈에 이끌려 사는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에 이끌려 살고 있나요? 이 세상에서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꿈을 가지고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신 축복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목적을 갖고 사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도구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히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 인생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룻이 현숙한 여인이며 성실하게 살았어도 자기 인생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를 만나며 그를 통해 안식처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고의 짐을 지고 살아가며 안식할 곳을 찾지만 진정으로 안식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안식처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28 Kommt alle her zu mir, die ihr euch abmüht und unter eurer Last leidet! Ich werde euch Ruhe geben. 29 Vertraut euch meiner Leitung an und lernt von mir, denn ich gehe behutsam mit euch um und sehe auf niemanden herab.[4] Wenn ihr das tut, dann findet ihr Ruhe für euer Leben. 30 Das Joch, das ich euch auflege, ist leicht, und was ich von euch verlange, ist nicht schwer zu erfüllen.«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 빚을 대신 갚아 주실 분이 되십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 Aber was sich keiner verdienen kann, schenkt Gott in seiner Güte: Er nimmt uns an, weil Jesus Christus uns erlöst hat.  고 말씀합니다. 

 

미국의 마약 중독, 코카인 중독자들이 참 많은데 코카인 중독자의 아이로 태어나서 날 때부터 미숙아로, 또 맹인으로 태어난 아이가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더플리’라고 하는 아이인데 코카인 중독자인 어머니의 뱃속에서 6개월 만에 800g의 미숙아로 태어납니다. 뇌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서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고 자폐증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낳고 부모가 위탁기관에 버리고 사라졌습니다.

 

위탁기관에서 그 아이를 돌보고 있을때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고모가 15개월된 이 아이를 찾아 입양을 합니다. 입양을 해서 이 아이를 사랑으로 잘 돌봐서 키웁니다. 애가 앞도 보지 못하고 자폐증이 있지만은 사랑으로 이 가정에서 돌봤습니다.

 

그런데 보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그냥 자폐증 환자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 아이를 어느 날 피아노에 앉혀놨는데 평생 피아노를 배워본 적도 없고 쳐본 적도 없던 아이가 노래를 부르면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합니다.

 

그때 부른 노래가 ‘open the eyes of my heart’ ‘내 맘의 눈을 여소서’ 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모습을 본 고모가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 본격적으로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자폐증에 악보를 보지 못하지만 음악을 한번 들으면 바로 따라칠 수 있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메모리얼 데이 행사에 나가서 미국국가를 부르고 나서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는데, 2013년에 첫 앨범을 내게 되고 전국을 다니며 찬양을 부르는 찬양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이 나도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절망 가운데 이 아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얻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고모, 크리스천 더플리는 장애아를 둔 부모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변화는 일어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녀들과 그들의 위대함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은 놀라울 뿐입니다!”

 

더플리는 이와 같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내 꿈의 가장 큰 후원자는 하나님입니다. 눈이 보인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이 가려진 자들도 있습니다. 나는 내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볼 수 있습니다.”

 

2001년 생으로 지금 19살쯤 되었을 것인데요.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신의 삶을 정말 의미있고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을 통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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