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

17-04-09 07:07

최후의 심판(사순절 제 3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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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31-46절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25: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25: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25: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1.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자의 자세와 관련해 말씀하신 세번째 비유입니다.
열처녀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준비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달란트 비유는 주님의 소명에 대한 성실과 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한다고 하였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양과 염소가 같은 들판에서 뒤썩여 풀을 뜯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양은 양의 우리에 염소는 염소의 우리에 각각 들어감으로써 두 무리 사이에는 철저한 분리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일은 양을 치는 목자가 담당을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는 악인과 의인이 뒤썩여 살아가지만 일단 생을 마치고 심판의 때가 되면 그들 사이에는 영원한 분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는 것은 각각 의인과 악인을 대표하는 상징적 매체입니다. 

양과 염소는 서로 다른 독특한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염소는 목자보다 앞서 나가고 뒤에 따라오는 양들을 위해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길라잡이를 하면서, 먹는 풀과 잎도 뒤에 따라오는 양들을 위해 그리고 다음해 푸른 초장을 위해 적당히 먹고 빨리 움직입니다. 한마디로 개척자 정신과 희생정신이 강합니다.

집단 서식보다는 개인적 서식 경향성을 지니며 더운 날씨와 태양 볕에 강한 짐승입니다.
뿔이 있는지라 한 번씩 목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반항기질이 있으며, 공격적 경향성을 있습니다.

양은 염소에 비하여 시력이 좋지 않아 앞서가지를 못하고 목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대체로 온순하나, 식탐이 많은지라 초원의 잎사귀 풀 그리고 뿌리까지 다 먹어 자연을 초토화시키지만, 앞서간 염소의 식성을 모방하는 습관이 있는지라, 자연의 초토화는 선봉대 염소의 도움으로 방지가 됩니다. 시야가 어두워 바로앞 목자를 쫄쫄 따라가거나 아니면 목자 근처의 방울달린 양의 바울 소리를 듣고서 이동하며 움직입니다.

때로는 고집이 쎄고 위험한 장소나 위기가 오면 고집불통으로 움직이지 않는 습성이 있어 목자의 애간장을 태우지만 앞서간 염소들이 움직이면 염소를 따라 위기를 탈출하게 됩니다.
더위에 약하고 항상 무리를 지어다니며, 평소에는 목자를 안심시켜주지만 간혹 무리에서 이탈하면 혼자서는 못살아가는 특징을 지닙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목축업을 하는 사람은 염소 25% 양75%정도의 비율로 염소와 양을 키웁니다. 

교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염소같이 솔선수범하고 궂은 일을 앞장서서 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헌신의 본을 보이는 성도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의 무리들을 잘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염소 같은 성도 뿐만 아니라 양같이 순종을 잘하고 요청받은 일을 잘 따라주는 사람들도 있어야 합니다. 양과 염소의 비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시너지효과를 나타냅니다. 

염소 같은 성도만 모인 교회는 항상 시끄럽겠죠. 각자 자기 생각대로만 움직이려고 할테니까요. 양같은 성도들만 있으면 목자가 힘들겠죠.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신경써서 해야 할테니까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는 것 처럼 교회는 각각 가진 은사대로 서로 봉사해야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염소같은 성도인가요? 양같은 성도인가요?^^

그런데 염소는 자기 멋대로 돌아다녀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통제아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목자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거나 시야에서 멀어지면 목자는 돌팔매(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도구)를 가지고 염소에게 던집니다. 처음에는 살이 많은 엉덩이 같은데 맞춥니다. 염소가 내가 너무 멀리왔구나 하고 목자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더 멀리 가면 다시 돌팔매질을 합니다. 이번에는 발목에 맞추는데 대부분의 염소는 절뚝거리면서 목자의 시야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도 더 멀리 도망가는 염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돌팔매질을 해서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로(속된말로 똥침을...) 던집니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의 염소는 목자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한두마리는 더 멀리 도망가서 결국 유다 광야의 험한 골짜기에 떨어져 죽거나 맹수에게 잡혀 먹어 죽게됩니다. 

염소는 진취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목자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종종 악인을 염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은 순하디 순해서 목자없이는 스스로 길도 잘 못찾습니다. 주님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의인을 양에 비유합니다. 
공동체에서 목자(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염소는 똥침을 맞을 수 있으니까 조심합시다. ^^

2. 그 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에게 복 받을 자들이여 창세로 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배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먹을 것을 주었도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의인들이 언제 우리가 주님께 그리하였습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반대의 말을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 1차적인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 지금 예루살렘에서 종교,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분위기를 감안해본다면,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들 역시 어떤 환경에 처할지 눈에 보이는 상황인데...
 * 예수님의 이 메시지는 마지막 심판 때, 그들이 너희들을 어떻게 대접했는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선포로 들렸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 “와~~ 주님이 다시 오시면, 쟈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따라 보응해준대!! 앗싸~~” 뭐 이런 분위기랄까요? ㅎㅎ
 * 특히나 주님이 다시 오심(마지막 때)을 자신들 생애 가운데 일어날 가까운 일로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이 압박감이 높은 상황에서 상당한 격려의 메시지로 듣게 되는 거죠^^
* 이런 메시지로 본문을 듣게 될 때,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힘이 되는 말씀이지 않을까요?
 * 게다가 바울이 말한 것처럼,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딤후1:8)들이 어느 시대에든 있게 마련이니까요..
 * 계6:10; 8:1-5를 보면, 하늘의 예배 가운데, “주님 언제까지 우리가 이 고통을 참고 기다려야 우리가 피흘린 원한을 풀어주시고 정의를 이루시렵니끼?”라는 성도들의 울부짖음(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면서 세상을 향한 심판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보좌에서는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공평을 이루시기 위해, 다른 말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다가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풀어주시기 위해 심판을 행하고 계신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이 시대에 반하여 끝까지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2) 마더 테레사는 “예수님은 내 옆의 지극히 보잘 것 것 없는 이들이 바로 예수님이 변장하고 찾아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보는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을 하기 쉬운데요.... 자주 보기 때문에 더 모르는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는데 온전하게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안희정씨가 그랬다나요? 사랑하는 사람은 싸우면서 사랑이 자란다고.... 개뿔... 무슨 싸우면서 사랑이 자랍니까 상처만 커지지... 

사랑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말하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일하는 방식이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하죠. 다른 것일 뿐이지. 그런데 대부분 다른 것이 틀렸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상하게 되고 다툼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9절에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씀합니다. 

다름이 있어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마음에 담아두기 보다는 잘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풀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겸손과 부드러움과 애정의 그릇에 담아서 전달해야 합니다. 꾸짖듯이 화내듯이 미움을 담아서 전달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하고 서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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